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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초보 운전자라서 생각하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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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면허를 딴지 10년이 넘었지만 소유한 자동차가 없다보니 흔히 말하는 '장롱 면허'의 만년 초보 운전자다. 운전 경험은 혼자서 차를 몰아 본 것은 딱 한번. 그 외에는 대체로 동승한 운전 경력자들의 코치를 받았고, 무면허 운전자와 함께한 건 3번 정도? 시내 보다는 한산한 자동차 전용 도로나 고속도로, 시골길이 주 무대였다. 


만년 초보에 운전한 적은 몇 번 없지만 사고 경험도 있다. 첫 번째 사고는 면허 연습장에서. 장내 연습 중에 커브 돌 때 벽에 설치한 타이어에 부딪혔는데 당황한 나머지 후진할 생각을 못해서 그대로 핸들을 꺾어서 빠져나오면서 연습용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푹 들어가게 만든 일이다. 잠깐 운전에 집중하지 못하고 멍해졌을 때 일어난 일로 그 다음부터는 운전대를 잡으면 날카롭게 긴장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사고는 혼자 주차 타워에 차를 넣으려다가 타워 입구 모서리에 '콩'하고 부딪혀서 앞 범퍼를 살짝 찍었다. 하필 그 주차 타워 입구가 경사져있어서 일자로 맞춰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회사 차였는데 다행히 대표님이 괜찮다 하셔서 그냥 넘어갔다. 마지막은 제주도에서 렌터카를 빌렸을 때다. 길가에 차를 세우려다 보도 경계석에 타이어 휠을 두 번 정도 긁었던 일이다. 완전 자차 보험을 들었는데, 당시에는 휠 긁힘은 문제 삼지 않았던 시절이라 무사히 넘어갔다. 요즘은 이런 운전자가 많은 건지 완전 자차 보험을 들어도 휠은 보험 적용이 안된다고 주의를 들을 때마다 그때가 떠오르면서 길가에 차를 세울 때에는 더 조심하게 된다. 


운전할 일이 일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다보니 기본적으로 뚜벅이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면서, 운전대를 잡게 될 일이 생기면 늘 초보 운전자의 마음으로 임하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제주도에서 운전할 일이 있었는데, 문득 실수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횡단보도 중간에 멈춰 있는 차를 보고 혀를 차거나, 도로 위에서 어설프게 끼어들기를 하거나 답답하게 운전하는 이들을 보며 운전자가 욕을 할 때 동조하면서 함께 뭐라 한 경험이 있지 않나?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막상 입장이 바뀌어 운전대를 잡고보니 의도해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차가 많은 시내에서 앞 차의 꽁무니만 보고 따라가다 뒤늦게 빨간불을 발견하고 멈췄는데 그게 횡단보도 중간이었다든가, 차선을 바꿔야 하는데 주변에 차는 많고 온통 신경은 끼어들기에 집중된 상태에서 약간의 틈이 보여 들이밀었다가 뒷차의 빵빵 소리가 들려서 다시 있던 차선으로 돌아오게 되거나 아니면 무시하고 끼어들기를 고집하고 가게 되었을 때, 차 안에 있어서 들리지는 않겠지만 입으로 '미안합니다'를 연발하게 되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불타오르게 된다. 비상등으로 인사를 하고 싶지만 이미 놀라서 허둥지둥. 이렇게 되고 보니 비운전자의 입장에서 안 좋게 봤던 점들을 조금은 너그럽게 보게 되었다. 운전자 입장에서도 초보인 나보다 더 미숙한 운전자를 마주하게 되더라도 욕을 하기 보다는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아무리 너그러운 시선으로 보더라도 운전 미숙으로 사고를 유발하는 행위는 절대 용인할 수 없겠지만, 모두가 태어날때부터 운전 베테랑은 아니었을테니 미숙한 자를 이해하는 도량은 지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뚜벅이라 하더라도 평생 운전을 안 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마찬가지. 진짜 마음이 나쁜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안해 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보통의 사람들일테니, 순간의 감정을 잠시 누르고 긍정적으로 타인을 바라볼 수 있다면 서로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보행자 입장에서 최근 경험했던 기분 좋은 일이 있다.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에서 차가 오길래 보내고 건너려는데 차가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서며 운전석에 계신 분이 먼저 건너가라고 손짓을 하셨다.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 이런 경우는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차 안은 에어컨도 나오고 시원할테니 땡볕에 노출된 행인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는 운전자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악천후에는 운전자가 행인을 우선 배려하는 인식이 널리 퍼져서 자리잡으면 좋겠다.



by ichi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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