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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회사를 다녀서 알게 된 소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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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회사에서 일주일 간의 고통스런 경험 이후, 나는 전 직장(이상한 회사 제외)을 그만둔지 약 9개월만에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상한 회사를 그만두고 이력서를 정비하며 일주일을 보냈고, 그 사이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회사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상한 회사에 들어가게 됐을 무렵엔 불안감에 앱 기획자를 구한다는 공고만 보면 다 지원을 했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던 탓에 다음 지원은 면접을 본 회사에서 떨어지면 하자고 생각했건 것 같다. 합격을 하고 출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 달 전에 지원했던 대기업에서의 연락과 다른 지인의 소개가 있었지만, 고민을 하다 이쪽의 작은 회사로 오게 되었다.

출근한지 이제 3주가 좀 넘었다. 그 사이 문득 문득 소소하게 ‘행복하다’ ‘좋다’는 감정이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기록차원에서 남겨본다. 순서는 임의다.

1. 재난 문자
내 전화기는 해외에서 출시된 안드로이드 기기인데 그래서인지 재난 문자가 수신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쉬면서 폭염일 때에도 그 문자를 수신한 적이 없었고, 지인들과의 메신저 대화에서 재난 문자가 왔다는 이야기로 폭염임을 인지했었다. 출근해서 업무를 보던 중, 사무실에서 재난 문자 알람이 울렸을 때 모두가 “아이고~ 더워 죽겠다!”를 외쳤지만 난 ‘출근하니 이런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좋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월급
출근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급여일이 되어 한 열흘치 급여를 받게 되었다. 오랜만에 받는 월급이라 기분이 묘했다. 다시 월급 노예가 된 것 같기도 했고, 자립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백수일 때 나에게 밥과 술을 샀던 지인들에게 월급턱을 냈던 게 가장 기쁜 일이었다.

3. 시원한 사무실
집에 있을 때도 전기세 걱정을 하며 에어컨은 사용했지만, 뜨거운 한낮에 시원한 사무실에 있는 건 행복한 일인 것 같다. 물론 이 또한 공짜는 아니고 내가 받는 급여 이상의 매출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사우나 같은 밖에서 시원한 사무실에 들어갈 때 느껴지는 잠깐의 서늘함은 소소한 즐거움이랄까?

4. 가끔 맞는 휴일
쉴 땐 매일이 휴일이라 빨간날을 맞이해도 별로 큰 감흥이 없었다. 일을 하니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주말과 가끔의 공휴일이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5. 인간 관계
전 직장에서 함께 했던 동료들을 가족같이 생각하다 막판에 안 좋은 모습을 보면서 실망과 함께 자책을 했었다. 쉬는 동안에도 문득 문득 떠올랐던 그때의 인간 관계 때문에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했다. 사회 생활을 하며 평생의 친구를 얻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고, 모두가 솔직하게 상대방을 대하는 건 아니라는 걸 전 직장을 그만두면서 알게 되었다. 새 회사를 다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예전처럼 인간 관계에 목매지 않고 한발짝 떨어져 있는 나를 느낄 때마다 왠지 모를 기쁨이 있었다. 물론 이런 상태가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확신은 없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니까~

6. 불평 불만의 경계
전 직장을 그만둘 무렵 회사에 대한 온갖 소문과 어두운 분위기가 넘쳐났었다. 나 또한 거기에 물들어서 불평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었다. 그 불만의 원인 제공자였던 대표에게 신뢰감 회복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시점에서 대표는 내가 자신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 회사에서 일을 함에 있어서 니편 내편을 따지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회사는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한마음으로 일을 도모해야 하는 곳이니까. 당시의 불평 불만이 얼마나 나를 좀먹었는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에 대안 없이 불평 불만을 이야기하지 말자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사람도 경계하게 되었다. 지금도 회사에서, 주변에서 불평 불만만 늘어놓는 사람을 종종 마주할 때가 있다.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경계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휩쓸리지 않을 때 나는 아직 잘 가고 있고 내가 그들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우월감에서 오는 기쁨이 있다.

이 외에도 뭔가 더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쓰려니 잘 생각이 안 난다. 이런 기억력이라니... 앞으로도 자잘하게 행복감을 느끼는 일은 계속 있을 것 같고 그때마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감사하며 살고 싶다.


by ichi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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