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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독후감

11336 - 우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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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336(일일삼삼육)
저자: 우지혜
출판: 신영미디어



가랑비처럼 스며드는 사랑 이야기


이 책을 구입한 건 순전히 리디북스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 페이지에 있었고 알 수 없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도저히 스토리가 짐작되지 않는 제목 탓에 사놓고 한참을 내서재에 방치해 두다가 며칠 전에 완독했다. 완독한 뒤의 소감은 '이렇게 칙칙한 사람들로 로맨스 소설이 가능하구나.'였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건 맨 처음 도입 부분에서 여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생각해 읽고 있었는데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였다는 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사장 이야기가 나오면서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줄거리는 가난한 산동네에서 태어나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둔 '백구'라는 막 지은 것 같은 이름의 남자 주인공과 어느 날 갑자기 백구의 옆집으로 들어온 '백사희'(백구에게는 자신을 '백사'라고 부르라 한다)라는 여자 주인공이 만나면서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백구가 열일곱살 때 산동네 방 한 칸과 고물 트럭 한 대, 통장에 88만 원을 남기고 죽어서 백구는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가 일하던 용역 회사의 인부가 된다. 7년 뒤 비어있는 옆집에 스미 듯 들어온 미스터리한 백사의 편의를 봐주게 되면서 두 사람은 서서히 서로에게 빠져든다. 
백사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이혼을 하고(사실 혼인 신고도 안 했던 결혼이니 이혼이 무의미하긴 하다) 해외로 나갈 준비를 하기 전까지 집착이 심한 남편을 피해 숨어 지내려 백구네 옆집으로 온 것인데, 어렸을 때 이 집에서 살았고 백구와도 잠깐 인연이 있었다는 설정이다. 공부도 잘해서 직업이 의사지만 이 역시 남편 때문에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돈 많고 능력 좋은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다른 작품에 비해 다소 우울한 느낌이 드는 작품인 것은 사실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바보같을 정도로 순수하고 올곧게 살아가는 백구의 모습과 폭력 남편의 집착을 피해 숨죽이고 숨어 지내는 백사의 모습은 밤새 내리는 축축한 비처럼 무겁고 안타깝다. 그나마 백구의 절친으로 등장하는 '석철'의 시도때도 없는 섹드립과 쌀쌀맞은 듯 하면서도 푸근하게 챙겨주시는 미자 아주머니 덕에 어두컴컴한 나락으로 떨어지진 않는다. 찰지게 내뱉어지는 욕들이 남녀 주인공의 암울한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의 배출구가 되는 느낌이랄까. 작중 등장인물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좋은 점이라 생각한다.


책 제목인 11336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눈치채지 못했다(눈치가 없어서...). 목차에도 있었던 백구의 109와 백사의 104를 곱한 숫자였다는 건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검색을 해서야 알게 된 사실. 뭔가 거창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읽는 내내 생각했던 터라 조금은 허탈했다. 해피엔딩으로 잘 마무리가 되었고 재미있게 읽었지만, 전반적으로 암울한 분위기라 개인적으로 선뜻 손이 가지 않을 것 같은 작품. 언젠가 차분한 마음으로 감동을 느끼고 싶은 날이 온다면 이 작품을 다시 손에 쥐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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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chi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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