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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독후감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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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2년생 김지영
저자: 조남주
출판: 민음사



작년 가을쯤 지인에게 선물 받았던 책을 이제야 다 읽게 되었다. 두껍지 않고 술술 읽히는 내용이라 금방 볼 수 있었지만 개인적인 일들과 겹쳐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82년생 여자 김지영. 나는 빠른 -요즘은 빠른 생일이 없어졌지만- 82년생 여자다. 81년생 친구들과 학창시절을 보냈고 비슷한 시기를 거쳐온 사람의 이야기라 제목만 보고는 <응답하라 1994>처럼 공감되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았다.


책은 2015년 가을의 김지영 씨의 상태와 상황에서 시작해 유년기(1982년~1994년), 청소년기(1995년~2011년), 대학과 사회 초년생시절(2001년~2011년), 결혼과 출산(2012년~2015년)을 순서로 진행되다 김지영 씨를 상담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2016년)로 끝을 맺는다. 그 시절에 태어나 지금 30대 중후반이 된 여성이라면 꽤나 공감될만한 사회적 이슈와 인식, 편견, 차별 문제 등의 에피소드들이 사실에 근거해 등장한다.
유년기의 초반에는 김지영 씨의 부모 세대의 이야기와 남아를 선호했던 당시의 세태를 담담히 그렸는데 이 책에서 가장 많이 공감했던 부분이었다. 우리 집도 엄마와 이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두 삼촌의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셨고, 삼촌들은 공부를 했다. 책에서는 삼촌들이 번듯하게 성공했지만 우리는 그렇진 않았다. 지금 외할머니를 모시는 건 우리 엄마다. 아빠는 3형제 중 막내다. 여러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병사하면서 결국 3형제만 남았다. 친할머니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큰아버지가 아빠를 키웠다고 했다. 시부모님이 안 계셔서 엄마는 시집살이를 하진 않았지만, 집안에 아들이 귀해서(큰집이 4녀 1남, 작은집은 3녀) 아빠는 아들을 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출산을 거듭해 2녀 1남의 자녀를 두게 되었다. 언젠가 엄마가 지나는 말로 "그래도 너는 첫째라 여러 사람 손을 탔지만, 둘째는 아빠가 안아보지도 않았어."라고 했을 때 난 꽤나 충격을 받았었다. 자라면서 아빠가 아들을 우선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시에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취업을 하고 용돈을 드리면서 아빠에게 "아빠 그래도 딸이 낫지?"하는 말을 했을 때 아빠는 멋쩍게 웃으시며 "그래~"하셨었다. 우리 집 막내는 오냐오냐 하셨을 친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계셔서 그런지 자기중심적으로 자라진 않았다. 다만 엄마는 나와 여동생에게는 집안일을 거들게 하셨지만 남동생에게는 지금도 어떤 집안일도 시키지않는다. 남동생도 그러한 일들에 별로 관심이 없기도 해서 가끔 주말에 집에 가 보면 남동생이 하는 일이라곤 느지막히 일어나 라면 끓여먹고 설겆이를 하거나 밖에 있다 집에 들어올 때 뭐 사오라는 심부름을 하는 정도? 가끔 막내가 아들인 집을 보면 '너희 집도 그랬겠구나....'하게 된다.
김지영 씨는 2녀 1남 중 둘째로 아들을 편애하는 할머니를 보며 자랐고, 남학생이 주로 반장이 되는 초등학교를 거쳐 여학생의 복장과 행실만을 문제삼는 중학교, 여학생의 몸을 아무렇지 않게 건드리는 선생님이 있는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해 어렵게 취업을 한다. 그러면서 IMF로 명예 퇴직을 한 아버지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어머니의 모습과 아무렇지 않게 여자에게 막말을 하는 대학 선배, 동아리 회장은 주로 남자들만 한다든지, 아무리 우수한 성적의 여학생이 있어도 취업 추천은 남자들만 받는다든지, 직장에서도 좋은 기회는 남자 직원들에게만 돌아가거나 회식자리에서의 성적인 무례한 일들이 함께 그려진다. 그 다음은 결혼 후 임신으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게 되면서 드는 생각과 주위의 배려 없는 시선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스스로도 내용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보통의 82년생 여자인 나에게는 익숙한 경험이자 흐름이다.


꽤 공감되는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이야기의 전개상 다소 극단적으로 안 좋은 경험을 모아서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약간 규모있는 시골에서 국민학교를 나왔는데 이 작품과 달리 여학생 반장이 꽤 많았고 성별과 상관없이 똘똘하면 대우받는 학교였다. 김지영 씨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서 남녀공학을 다녔지만, 내가 있던 곳은 공학보다 남중남고, 여중여고로 나뉘어 있는 학교가 더 우세했던 비평준화 지역이었다. 물론 지금은 이들 학교도 전부 공학으로 바뀌었다. 여중여고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는 반드시 구두만 신어야 한다거나 하복 안에 반팔티를 입어야 하는 식의 이상한 규정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귀밑 3센티 이내의 단발 규정이 제일 싫었는데, 반곱슬에 숱이 많아서 여름에는 그 머리가 너무 더웠기 때문이다. 더위에 지쳐 숏커트를 했다가 걸려서 잡초를 뽑았던 것이 가장 어이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날씨가 쌀쌀해 지면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다니기도 했는데, 선생님들은 그런 복장을 칠칠치 못하다고 싫어하시긴 했지만 복장 검사를 할 때만 그렇게 입지 않으면 되니 딱히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물론 쉬는 시간에 말뚝박기 같은 놀이도 즐겼다. 회초리로 가슴을 건드리거나 하는 선생님은 진짜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싫어했지만 그 분께 대놓고 불만을 얘기하진 않았던 것 같다. 기억에 연세가 좀 있는 분이었고 교감인지 하는 직위에 있었고 일단은 선생님이고 어른이니까. 아이들이 여자 선생님께 하소연을 했던 것 같은데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자주 출몰하는 바바리맨도 역시 있었다. 난 발이 늦어서 한번도 보진 못했지만.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창가로 몰리는 일도 있었고 총학생회에서 그 바바리맨을 추적해 옆 동네까지 따라갔다가 놓쳤던 일도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책에서처럼 혼나거나 하지 않았고, 선생님들은 대체로 그런 사람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고자 하셨다.
대학도 여학교라 남학생이 우선되는 부당한 대우를 받을 기회는 없었다. 직장인이 되었을 땐 남자 선배도 있었지만 대체로 평등하고 상식적인 관계였던 것 같다. 다녔던 회사들이 주로 여자 비율이 높아서 성적인 불쾌감을 느낄 일은 전무했는데, 남자 직원이 꽤 있던 회사의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어린 여자 직원들이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엉겨 붙는 분이 있었다. 술도 먹었겠다, 애들 싫어하는데 엉겨 붙지 말고 다른 자리로 가시라고 외쳤었다. 그는 여직원들 사이에서 술자리에서의 일화가 유독 많았던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자주 마주쳤던 사람이고 언니(?)의 입장에서 대놓고 외치긴 했지만, 만약 업무적으로 연관된 타사의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대놓고 소리치지는 못했을 것 같고, 어떻게 했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그동안 업무적으로 만났던 사람들은 다들 상식적인 분들이어서 그런 쓰레기를 마주하는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아직 미혼이라 출산 후의 일을 계속하지 못하게 되거나 차별받는 것에 대해서는 직접 경험해 보진 못했다. 주변에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지인들이 있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된 것들이 전부다. 일을 하고 싶은데 육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는 '시댁이나 남편이 집에서 육아에 전념하기를 원해서'였다. 나머지는 팀이나 회사와 약속한 육아 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해서 열일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아이를 봐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전부 어떻게든 어린이집을 구하고 방안을 찾아서 다시 일터로 복귀했다. 다행인지 회사도 재택근무나 근무시간 조정이 그래도 쉬운 곳이긴 했다. 책에서는 주로 남성이 성적 차별을 주도했는데, 생각보다 같은 여성 상사에 의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지는 경우도 많다. 같은 여자로서 후배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면 좋으련만, 이용 가능한 최대의 육아휴직 기간을 다 쓰기도 전에 조기 출근을 요구한다거나 육아 경험자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빡빡하게 구는 사람도 많았다. 아니면 나때는 그렇게 안 했으니(못 했으니) 너도 그렇게 하면 안되지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세상에 소설에 등장하는 것 같은 남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며, 앞서 이야기한 것 같은 여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소설이 등장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한국 사회의 성적 불평등과 인식이 아직도 남아 있고 해소되기에는 갈 길이 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성별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할 때 비로소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또라이 보존의 법칙에 의해 아무리 해도 바뀌지 않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남자든 여자든 인간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려고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좋아질 수도?




by ichi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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